오는 16일은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장군의 순국 4백주기가 되는 날. 오늘도 국란(國亂)이지만 4백년 전에도 국란이었다. 지용희(池龍熙) 서강대 교수(경영학)는 이순신 장군을 단지 임란을 극복한 무장(武將)으로만 보지 않고, 그의 정신과 전략이야말로 오늘날 경재전징을 기기는 탁월한 경영비책(秘策)이라고 내 놓는다. 池교수의 '이순신 경영학'을 기념시리즈로 싣는다.   - 편집자 -            -중앙일보-1998.12.8

  지구촌 시대다. 경제의 국경은 희미해지고 무한경쟁 체제로 진입하고 있다 우리는 안타깝게도 여기서 패해 초라한 처지가 됐다. 국제경쟁력이 취약해 만성적인 무역적자와 외채에 허덕이다가 급기야 국제통화기금(I M F)의 구제금융까지 받게 됐다.
  왜 이렇게 됐을까. 어떻게 하면 이 난국을 하루 빨리 극복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서 23전 23승 한 이순신 장군에게서 찾을 수 있다. 무력전이든 경제전이든 전쟁은 전재이며,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원리도 마찬가지다. 이순신의 청렴결백과 높은 신뢰성, 겸허한 마음가짐에서 온 유비무환의 자세, 솔선수범과 인간애에 바탕을 둔 리더십, 용기와 결단, 거북선 개발과 같은 창의성, 철저한 기록정신,

 뛰어난 정보활용 능력과 전략 등은 오늘날 우리가 경제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다. 이순신에게 참패한 일본 사람들은 메이지(明治)유신 이후 해군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기 위해 세계제일의 것을 본 받으려는 벤치마킹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에 따라 이순신의 정신과 전략을 깊이 연구했으며 또 그를 존경해 마지 않았다. 일본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함대의 한 함장은 러시아의 발틱함대와 싸우기 위해 출항하기 전 이순신의 영혼에 도움을 빌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일본의 대표적인 역사소설가 시바 료타로는 '언덕 위의 구름'이라는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 이순신은 당시 조선의 문무관리중 거의 유일하게 청렴한 인물이었고, 군사통제와 전술능력, 충성심과 용기가 실로 기적이라 할 만한 이상적인 군인이었다. (...)이 인물의 존재는 조선에서 그 후 잊혀졌지만, 일본인들은 그를 존경해 메이지시대 해군이 창설되었을 때 그의 업적과 전술을 연구했다. (...) 당시 일본인들은 러시아제국이 동아시아 병탄의 야망을 갖고 있다고 보았으며 동진해오는 발틱함대를 그 최대의 상징으로 여겼다. 동아시아를 지키기 위해서는 이들을 한 척도 남김없이 쳐부수어야 한다는 확신하고, 동아시아를 위한 일인 이상에 빌었다는 것은 당연한 감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이순신에게 참패한 일본사람들은 그를 연구해 청일전쟁.러일전쟁 해전에서 승리했을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조선을 병합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업적과 전략을 깊이 연구하거나 본받지 못해 임란 이후에도 외침에 시달리다 결국 나라까지 빼았겼다.
  앞으로 경제전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우리는 무적함대와 다름없는 일본의 자동차회사, 미국의 컴퓨터회사 등 세계적인 기업들과 본격적인 경제전을 치르지 않으면 안되는 시점에 와 있다. 과연 얼마나 냉철한 문제의식 속에서 이에 대비하고 있는가. 최악의 역경 속에서 연전연승한 이순신의 정신과 전략은 이 점에서 귀감이 될 것이다.